평민 한국남성 권익 보호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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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마이가든



미국이 총기를 금지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 자질구레

권리일 뿐 아니라 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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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회계약설에 의해 탄생된 현대국가의 정체성에서 보자면 원론적으로 시민들에겐 정부를 뒤집어 엎을 권리는 물론 의무까지도 존재한다는 것이 새로운 생각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이것이 실현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민의 무장권입니다.

당연히 각종 무기(현대국가에선 총과 대포, 미사일 등등을 포함하여)를 소유하고 있는 정부를 뒤집어 엎으려면 시민들에게도 그에 맞설 무기가 필요한 것이며 그 최소한의 마지노선은 바로 총기인 것입니다.

이러한 총기의 소지를 통해 최근의 카다피를 비롯 많은 독재자들이 시민들에 의해 쫓겨난 것이며 또한 자유민주주의의 최전선에 있는 미국 역시 총기난사 사건과 같은 일련의 수많은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총기를 금지하지 못하는 것이죠.

즉, 총기는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최후의 저항권을 상징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선 아예 수정헌법에 시민들의 무장권을 보장해 놓고 있으며 이 헌법조항에 의거하여 시민들이 총기를 소지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역시 일제시대 일제와의 저항에 있어서 '총기'가 필수적이었음은 더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만주를 비롯 중국 각지를 떠돌던 독립군이 늘 곤란을 겪었던 것이 바로 총기무장이었고 중국으로부터 총기에 대한 지원을 받으면서 비로소 독립군이 제대로 된 형태를 구성하고 일제에 대한 저항도 본격적으로 하는 기반을 마련하게 됩니다.

이처럼 총기의 소지는 시민 개개인의 엄연한 권리이자 더 나아가 '의무'라고 볼 수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민족주의를 통해 시민들의 총기소지의 권리을 억압하고 있기도 합니다.

즉, 한국정부는 단순한 국가정부가 아닌 '한민족의 정부, 더 나아가 한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이며 따라서 그렇게 구성된 민족정부를 통해 '시민'을 대신하여 외세의 부당한 폭력은 물론 내부의 기득권 권력자들에 의해 시민들에게 가해지는 유무형의 '폭력'까지도 억제해 주겠다는 것이 시민들로부터 총기소지를 제한하는 명분인 것이지요.

시민들 역시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따르면 당연히 시민 개개인에겐 총기소지권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정부'가 성실하게 내부, 외부의 모든 폭력을 억제해준다고 하니 한발짝 양보하여 '민족정부'에게 총기소지권을 양보한 것입니다.

물론 총기가 개인에게 허용되면 좌파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테러로 나라가 한시도 조용하지 않을 것이며 이렇게 되면 정부도 골치아프고 좌파와 우파의 싸움에 껴서 중간에서 애꿎게 피해볼 시민도 골치가 아프니 서로 타협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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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본다면 현재 보수진영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와 다문화주의는 사실상 그것들이 추구되기 이전에 먼저 시민들에게 총기소지권부터 반납하고 추진하는 것이 맞습니다.

한국사회가 다문화주의를 선언한다면 그 순간부터 한국정부는 더이상 '한민족의 정부, 한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정부'임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시민들에게 총기소지권을 반납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역시 만약 그것이 추구되는 과정에서 재벌을 비롯 권력자들에 의해 시민들의 권리가 침해받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 즉시 시민들은 총을 들고 재벌을 비롯 권력자들을 카다피 타도하듯 타도할 수 있음을 전제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문화주의와 마찬가지로 시민들에게 총기소지권을 반납한 다음 추진하는 것이 맞습니다.

현재 50대 이상의 김이사 신자유주의 기득권 수꼴 세력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민족주의'를 통해 총기소지라는 시민의 당연한 권리를 억제하면서 머리로는 신자유주의와 다문화주의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욕을 들어먹는 것이고 그래서 매국노 소리까지 듣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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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도검류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다는 법이 생긴다고 해서 검도, 무술을 하는 사람들이 시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엄연히 시민의 권리인 총기소지에도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부당한 일인데 도검류에까지 세금을 매긴다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 크게 위배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사회가 워낙에 민족주의에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무기소지 금지를 당연하게 생각하다보니 나온 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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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92년도에 발생한 흑인 LA 폭동에서 한인들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역시 한국인들이 워낙 민족주의에 익숙해져 있어서 미국에서조차도 총기를 별로 소지하지 않고 있어서 피해를 자초한 측면이 큽니다.

애초에 한인들도 집에 다들 총 하나씩 두고 철저히 무장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있었다면 그 정도로 한인들이 개털리듯 털리지는 않았겠지요.

그렇게 털리고 또 털리고 개 털리듯 털리다 비로소 한인들도 '총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닫고 총을 들고 '폭력'에 저항하기 시작합니다만 또 고약한 '인종편견'의 미국언론들은 한인들이 총을 쏘는 장면을 크게 보도하기도 했죠...

아무튼 미국에서 사는 교민분들은 '민족정부'에 너무 익숙해 '총기'의 의미를 잘 몰라서 총을 집에 잘 안놔둔다고 하는데요. 교민들도 총 하나씩은 꼭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한국불교의 타락, 문제는 승려비행이 아니라 불교교리 자체의 문제 자질구레

요즘에 한국불교계가 승려들의 타락으로 시끄러워지고 있습니다.

근데 사실 승려들의 술, 도박, 여자문제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습니다. 여러 이유로 쉬쉬하고 있었다 뿐이지요...

그래서 이번 사건에 대해 알만한 사람들은 터질 일이 결국 터졌다는 반응들입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불교에 자정의 가능성이 단 1%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는데 사실 한국불교계의 이러한 타락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이미 고려시대때도 그러했고 불교를 탄압하던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타락상은 늘 있어왔습니다.

불교계의 이러한 모습이 조선시대 권력자인 유림에게 밉보여 철저히 탄압받는 빌미가 된 것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근데 이러한 한국불교계 타락의 근본원인이 일부 승려들의 비행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엔 '교리' 그 자체에서 기인하고 있기에 더 문제가 됩니다.

이미 이 문제는 1천년도 더 전인 티벳에서 벌어진 쌈예의 논쟁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다음 쌈예의 논쟁에서 인도불교와 중국선종이 대립한 주요한 쟁점을 요약하면, 첫째, 성불에는 선업(善業)의 닦음이 필요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둘째, 법성 또는 공성의 증득에는 반야에 의한 관찰 또는 위빠사나(觀修)가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단지 불사(不思)와 부작의(不作意)와 같은 선정(禪定)만으로도 성불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두 가지로 크게 귀결된다.

이렇듯 성불에 대한 상이한 견해를 놓고서 양측이 벌인 대론의 요점을 <최중캐빼가뙨(智者喜宴)>에서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즉, “마하연 화상이 말하되, ‘모든 유정들이 마음의 분별로 야기한 선과 불선에 의해서, 선취와 악취 등의 과보를 받으면서 삼계에 윤회하는 것이다. 어떤 이가 ‘일체를’ 전혀 사유하지 않고, 전혀 행하지 않는다면 그는 윤회에서 완전히 해탈하게 된다. 그러므로 ‘일체를’ 전혀 사유하지 않는 것이다. 보시 등의 십법행(十法行)을 행하는 것은, 범부로서 선근이 없는 우둔한 자들을 위해서 설해진 것이다. 미리 지혜를 닦아서 근기가 날카로운 자들에게는, 흰 구름이든 검은 구름이든 그 둘 전부가 또한 태양을 가리는 것과 같이, 선악의 두 가지도 역시 장애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를’ 전혀 사유하고 않고, 전혀 분별하고 않고, 전혀 관찰하지 않는 것은, ‘제법을’ 가히 보지 않고 곧바로(찍짜르, 頓超) ‘법성에’ 들어감으로써 십지보살과 같다”라고 주장하였다.

위 기사에서는 왜 티벳의 왕이 중국 선종의 보급에 급당황하여 쌈예의 대론까지 마련했는지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저 여러 불교 종파가 티벳에 한꺼번에 보급되면서 교리적 혼란이 발생했다고 두리뭉실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유독 다른 여러 종파가 보급될 때는 문제가 없다가 중국선종이 보급될 때만 문제가 되어 티벳의 왕이 급당황했다는 건 사실 의미심장한 겁니다.

즉, 속내를 알고보면 당시 중국선종의 보급과 함께 지금 한국불교에서 발생하는 승려들의 황당한 '탈선'의 문제가 당시 1200년전 티벳에서도 심각하게 표출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러한 승려들의 비행에 지적을 했더니 오히려 승려들이 당당하게 단박에 깨달으면 그만이고 선업은 하근기 중생이나 닦는 것이고 우리 선종 승려들과 같은 상근기 스님들은 선업따위는 닦을 필요가 없으며 선과 악을 분별하는 그 분별심이 오히려 잘못된 것일 뿐이며, 술을 술이라고 분별하지 말고 곡차라고 생각하면 곡차가 되는 것이고, 여자를 여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관세음보살이라고 생각하면 관세음보살이 되는 것이고 도박을 도박이라고 분별하지 말고 취미-여가-놀이로 생각하면 취미-여가-놀이가 되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생각 한번 돌리면 내가 있는 이곳이 즉시 극락이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외다. 그러니 나는 마음대로 여자랑 섹스하고 술먹고 도박하겠소이다라고 외치니 당시 왕으로서는 급당황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어떤 스님이 오늘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서 억대 도박 아닌 수백만원대 놀이문화라는 말을 하셨다고 하는데 이렇게 어이없는 말을 할 수 있는 뇌구조가 바로 중국선종의 교리에서 나오는 겁니다. 중국선종의 교리에 한번 물들면 일반인과는 뇌구조가 완전히 달라지게 되며 분별심이 사라져 술이 곡차로 보이고 여자가 관세음보살로 보이고 도박이 놀이문화로 보이게 되는데 그걸 가지고 네티즌들이 어이없어하며 왈가왈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인 겁니다.)

1200년전 티벳에서도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티벳의 왕이 직접 나서서 인도불교의 권위자를 급초청하여 당시 중국선종의 대표인 마하연 화상과 논쟁을 벌이게 한 것이지요.

결국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총체적인 문제는 승려들의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선종의 교리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는 겁니다.

이미 티벳에서도 천년전에 벌써 물의를 일으켰다가 인도불교의 최고 권위자인 까말라쉴라에게 개 두들겨 맞듯 참패한 후에 쫓겨간 중국선종을 통해 왜 한국불교계의 고질병들이 고쳐질 수 없는지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티벳의 왕은 쌈예의 논쟁 이후 참패한 중국선종측 승려들에게 '그 종교를 믿으려면 각자의 방에서만 믿을 것이며 밖으로 나와서 전도하지 말것이며 마하연 화상은 빨리 중국으로 돌아가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한국불교가 거듭나려면 이제 중국선종을 철저히 버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특히 요즘 중국선종의 대표적 수행법인 간화선을 무슨 민족전통의 수행법으로까지 등극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말입니다.

물론 요즘 중국선종인 한국불교계가 기독교의 압박에 대응하려는 효율적인 수단을 '민족주의'에서 찾고 있는 상황은 잘 알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는 곤란할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어찌되었든 '중국선종'에 불과할 뿐이며 중국선종은 분명히 '불교'가 아닌 이단(외도)인 것도 확실하고 교리적으로도 반드시 타락이 있을 수밖에 없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포스팅에서는 현재 연등회라든지 간화선이라든지 팔만대장경이니 하는 것들을 민족주의와 결부시키는... 그리하여 한국불교와 민족주의를 결부시켜서 반기독교, 반외세, 반서양, 반제국주의, 반물질주의 등등을 통해 말라비틀어져 사멸되어가는 불교의 활로를 모색하려는 한국불교계의 흐름에 대해 태클을 걸도록 하겠습니다.

흔한 반도의 50, 60대 아버지들 자질구레

가족과 소통할 새 없었던 베이비부머들 "의지할 곳은 산과 친구뿐"

베이비부머 가장들은 자녀들에게 물심양면 최선을 다했지만 아버지식 사랑을 부담으로 받아들이는 자녀들에게 소외받는 가장들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타는 속을 아는 동변상련(同病相憐)의 친구들끼리 어울려 산을 오르고 있는 것이다.

(중략)

이 클럽의 A(59)씨를 두고 동창들은 걱정이 많다. A씨가 요즘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울기 때문이다.

A씨는 일류대를 졸업하고 아내와 결혼해 곧장 미국에 가서 박사학위를 받은 수재다. A씨는 학창시절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자신이 열심히 공부해 일류대에 입학한 것을 떠올리며 미국에서 자녀들을 교육 시키면 더 좋은 성과가 나오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아들이 '한국인이니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주장해 한국에 돌아왔다. 미국대학에 자녀를 진학시키고 싶었지만 차선으로 한국의 명문대에 입학시키겠단 목표를 삼고 A씨는 분당에 둥지를 틀었다.

아들의 학교성적이 자신의 기대에 못 미치자 A씨는 매일 저녁 소주 한병을 마시는 습관에 젖었고 높은 목표를 설정해 부담을 주고 실망을 하는 아버지의 모습에 자녀들은 그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한 두 자녀는 취직해 A씨는 자녀를 키운 보람감을 느껴보고 싶었지만 자녀들의 냉랭함에 놀랐다. 취직한 아들은 아버지에게 제 월급에서 부모님께 '용돈'이나 선물을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딸은 술에 취해 울먹이는 A씨를 향해 "술 먹고 울면서 전화 하지마"라고 소리칠 뿐, 우는 아버지를 향한 다정한 말 한마디 나눈 적이 없다.

네, 흔한 반도의 50대 아버지들은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것이 이런 겁니다. 자식들의 의사와 바람은 신경 안쓰고 자신의 계급을 자식을 통해서까지 계속 유지하려는 그 '영속성'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자식을 도구로 삼은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흔한 반도의 아버지답게 저 아버지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과연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희망했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살고 싶은 아이에게 미국유학을 강권했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것을 보여주는 겁니다.

기사에서는 간단하게 아이가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주장해 미국유학을 그만두고 한국으로 들어왔다고만 간단하게 나와 있지만 그동안 아이는 얼마나 고민하고 절망을 하며 그야말로 '살아 숨쉬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지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똑바로 하랬다고 아이가 한국에서 살고 싶은지 미국에서 살고 싶은지도 몰랐던 아버지는 자식을 통한 가문의계급상승, 계급되물림이라는 욕망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막대한 '물적' 투자를 했을 뿐이며 진정으로 자식을 위한 '심적' 투자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물심양면의 지원이라는 말은 가당치도 않고 사실 그 '물적' 지원이라는 것도 장삿꾼의 투자일 뿐이지 아버지로서의 역할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는겁니다.

자, 그러니 이제 솔직해져야 합니다.

흔한 반도의 부모들은 자식을 통해 종족번식, 계급되물림 등등의 욕망을 달성하기위해 각종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일 뿐이며, 이는 장삿꾼이 더 많은 이득을 남기기 위해 투자를 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식들도 부모들에게 종족번식이나 시켜주면 되는 겁니다. 요즘같이 생존마저 어려운 상황에서 계급상승, 계급되물림까지 바라는 건 지나친 수익률을 기대하는 것이니 그것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심지어 술먹고 자식들한테 전화까지 해서 신세한탄씩이나 하는 모양인데, 자식들은 자라면서 자식들 성적이 별로 좋지 않다고 소주나 쳐마시는 부모를 보며 속으로 얼마나 피눈물을 흘리며 자랐을까요... 결국 진정으로 '냉랭한' 사람은 자식들의 슬픔을 외면하고 소주만 쳐마신 아버지인 것입니다. 근데 이제와서 술처먹고 자식한테 전화해서 신세한탄씩이나 하면서 그거 안받아 준다고 냉랭하다고 하니... 이 정도면 간이 배밖으로 나온 거나 다름이 없습니다. 남같으면 당장 쫓아가서 아구창을 돌려줄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나마 자식들이 취직은 제대로 한 모양이니 그것에 만족하며 살기를 바랍니다. 

좌파의 흔한 네이티브남성포비아-인종차별 자질구레

배신한 한국여성 찾아온 중국남성... 부끄럽습니다

참 이런 기사를 보면 외국인 범죄에 대해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하는 것은 물론 외국인과 국내인을 편가름하지도 말아야하기 때문에 심지어 외국인이나 조선족이 범죄를 저지를 경우 '외국인, 조선족' 등등의 표기조차도 하지 말자던 좌파들이 갑자기 뜬금없이 한국남성들의 라이따이한이나 코피노 이야기는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외국인 범죄가 한국인에 비해 특별히 높다는 근거는 없다라는 논리대로라면 라이따이한이나 코피노 역시 극소수에 불과한 일로서 현지남성들이 현지여성들을 미혼모로 만드는 것보다 딱히 높다는 근거는 없다고도 말할 수 있는 사안이 분명할텐데 말입니다.

결국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네이티브남성(한국남성)'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이며 이는 제가 이전에도 말했듯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에 해당됩니다.

즉, 서양백인들이 유포한, 후진국남성은 자기네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으며 후진국 여성들에 대한 그러한 억압과 탄압을 구원해주는 것은 서양백인남성이다라는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 한국식으로 변형되어 페미니즘 사이에서 확산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한국남성은 한국여성을(심지어 요즘엔 국제적으로까지 진출해 후진국 여성까지) 억압하고 있으며 이것을 해결해주는 것은 외국남성이다라는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이 한국식으로 더욱 변형되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겁니다.

문제는 네이티브남성(한국남성)은 한국여성의 적이고 외국남성은(심지어 한국식으로 변형된 오리엔탙리즘에선 서양백인남성은 발달된 자유민주주의적 사상으로 한국여성을 구원해주고 후진국 출신 외국남성은 원시문명속의 '순수함'으로 한국여성을 구해준다는 관념까지 개입된) 한국여성의 구원자이므로 외국남성을 들여오기 위해 다문화주의를 추진하자라는 과격한 운동으로까지 확산이 됩니다.

다문화주의의 추구에 있어서 그 책임의 경중을 따진다면 민족주의를 해체하여 싼 노동력과 친일문제를 해결하려는 보수우파가 35%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다문화주의로서 새로운 정치이념을 통해 현재의 상황을 타개하려는 386좌빨이 35% 정도... 마지막으로 일단 현재 표면상으로는 국제결혼여성 지원책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외국남성의 유입을 통해 한국남성을 대대적으로 타격하여 한국여성의 해방을 달성하겠다는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적 페미니즘에 사로잡혀있는 여성진영이 3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좌파진영-여성진영이 이러한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적인 페미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뜬금없이 한국여자의 잘못에 한국남자의(그것도 극히 극소수에 불과할) 과오를 은근슬쩍 들추는 행태를 보이는 것이죠.

ps

자기 아이를 버리는 한국남자들은 자기 아이가 아님에도 키우는 중국남자를 보고 배우라는 한국의 좌파-여성진영분들은 오히려 중국의 소수민족인 모수오족 여인들의 강인한 삶을 보고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전 인천방송을 보다보니 중국을 비롯 세계 각지의 여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프로가 있던데 정말 인상이 깊었습니다.

세계에는 티벳의 일처다부제부터 주혼이란 것을 하는 중국 윈난성의 모수오족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결혼제도가 있었습니다.

특히 모수오족은 주혼이라는 것을 하는데 일종의 결혼이 아니라 그냥 연애만 하는 개념으로 살더군요. 남자는 밤이 되면 조용히 여자집에 찾아가서 집안의 가장(모수오족은 집안의 가장도 그 집의 가장 어른인 여성이더군요)에게 인사를 하고 여자의 방으로 들어가 같이 동침을 합니다.

태어난 아이는 전적으로 여자 혼자서 키우고 남자에겐 권리는 물론 의무도 없는 형태라고 하더군요.

결국 좌파들이 그렇게나 좋아하듯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혹은 익숙해있는 법과 제도, 관습도 다 알고보면 문화의 산물이라는 겁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아이를 키우는 게 당연한 거지만 모수오족의 사회로 가면 오히려 그것이 비정상적인 것이죠.

좌파들이 흔히 말하는, '서로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라는 겁니다.

근데 자기 아이를 버리는 한국남자들에게 자기 아이가 아님에도 키우는 중국남자를 배우라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치 않는, 즉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보는 것이며 이는 철저히 한국식 부계혈통가족주의이자 가부장제의 시선에 불과한 것입니다.

한국여자들 가부장제는 싫어하던데 왜 또 이렇게 자기 자식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가부장제의 특혜는 좋아라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따라서 베트남이나 필리핀에서 자기 자식을 버린다해도 그건 결국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의 관점에서 개개인의 사상의 자유, 신념의 자유, 연애와 섹스의 자유를 모두 보장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올바를 것입니다.

가부장제가 싫으시다면 부계혈통에 근거하여 남자가 자식을 거둬 키우는 것부터 지양해야 하며, 따라서 부계혈통에 입각한 가족주의적 시선에서 비롯된 라이따이한이나 코피노 현상에 대한 비난부터 자제하는 것이 '다문화주의'로 전환해하는 한국의 모습에 걸맞는 모습일 것입니다.

선진국엔 보편화된 포르노, 성매매가 왜 한국엔 없나? 자질구레

“양육비 1인당 30만원 일률산정 탈피… 소득 반영한 기준안 이달중순 발표”

"외국에는 보편화된 양육비 산출 방식이 한국에는 왜 없나 생각했죠."

배인구(44·사법연수원 25회) 서울가정법원 부장판사는 지난해까지 양육비 사건을 담당하다 올해부터 소년부를 맡고 있다. 서울가정법원 양육비위원회 위원장도 겸직하고 있다. 양육비 조정을 이끌어 내고 판결도 하면서 '가이드라인이 있으면 이혼 부부들과 자녀, 판사들에게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생각은 서울가정법원 양육비위원회로 이어졌고, 이달 중순쯤 '양육비 기준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참 대한민국 판사님 생각이 이렇다는 건 정말 납득할 수가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지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랍니다. 안그래도 요즘 미국이랑 유럽이 다문화주의 한다고 우리도 다문화주의 하자는 사람들이 넘쳐나던데 말입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지 미국이나 유럽의 서구사회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중고교 국민윤리 교과서에 버젓이 무려 '서구화'를 지양하고 전통적 도덕 가치관을 함양하자고 써있는 판국에 왜 자꾸 '서구화'를 반영하는 각종 법과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물론 정 그렇게 서구화된 법과 제도를 도입하겠다면 미국, 유럽에서 보편화된 포르노, 성매매부터 합법화시켜야 할 것이고 말입니다.

포르노, 성매매는 잘못된 서구화고 양육비제도는 올바른 서구화인 걸까요? 아닙니다. 그렇지가 않습니다. 포르노든 성매매든 양육비 지급이든 결국 '천부인권'이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나오는 법과 제도인 것이죠. 각 나라마다 세세한 부분에서의 근소한 차이는 있을지라도 결국 서구사상의 근간인 '천부인권'이라는 공통분모에서 모든 법과 제도가 나오기 때문에 결국 큰 틀에서 포르노, 성매매, 양육비 지급 등의 문제들은 비슷하게 나아가는 경향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서구사회에서 보편화된 포르노와 성매매는 금지시키겠다고 하다가 양육비 제도는 서구사회처럼 하겠다는 건 누가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일 뿐입니다.

이 땅의 통치지배층들은 진정한 서구화가 무엇인지 숙고해보셔야 할 것입니다.

ps1

사실 양육비를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약육비를 부담하는 쪽에서 전적으로 결정하는 문제가 맞습니다. 자꾸 서구 선진국의 예를 드는데 일부 페미니즘 성향이 극히 강한 국가에선 강력히 규제를 하고는 있다고 하지만 사실 그런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정말 강력한 규제를 가하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고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양육비 지급을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국가의 직무유기입니다.

국가는 부모가 자녀에게 양육비를 제대로 지급하느냐 안하느냐 '감시'하는 역할을 할 것이 아니라 '부모'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국가 스스로가 책임지고 부모 대신 아이에게 양육비를 지급해야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자녀 양육은 '부모'에게만 지워져야 한단 말입니까? 굳이 공산국가가 아니더라도 현대문명국가, 복지국가라면 국가도 부모 못지 않게 아이양육의 책임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본다면 부모에게 자녀양육을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그것이 이행되나 안되나 '감시'만 하고 있는 서구 선진국 역시 올바른 복지국가라고 볼 수는 없는 것이며 그들 역시 위선과 기만의 사회임을 증명해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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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가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 키울 능력이 안되거나, 아이를 키울 의사가 없다면 그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도록 하거나 다른 가정에 입양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입니다. 

근데 이는 미혼모뿐만 아니라 결혼부부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거나 아이를 키울 의사가 없다면 그런 부부들 역시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거나 다른 가정에 입양시키는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아이를 키우느냐 마느냐 역시 미혼모(미혼부), 혹은 결혼부부 당사자가 선택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지요. 국가가 할 일은 아이의 생명권도 존중하되 미혼모나 미혼부, 결혼부부들의 '천부인권'인 자유의지 역시 침범해서는 안됩니다.

아이를 키우기 싫은데도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기지 못하게 하거나 억지로 아이 양육을 강요한다면 그 역시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입니다. 이는 결국 어느 여자가 프리섹스가 하고 싶은데 그걸 국가 차원에서 못하게 하는 것과 동일한 자유에 대한 탄압인 셈이지요.

마찬가지로 이혼을 한 전아내와 전아내의 자식에 대한 양육지원을 하기 싫다거나 혹은 전아내의 자식은 내 자식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그것 역시 인정을 하는 것이 개인의 자유에 대한 탄압을 막는 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선진국에서도 아직 해결을 못하고 있는 문제인데 그만큼 인류가 아직 모자른 부분이 많음을 반영해주는 것이라고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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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구사회와 비교해서 양육비 지급 문제가 더 복잡해지는 건 한국사회가 유난히 부모에게 많은 짐을 짊어지우고 있다는 겁니다. 

사실 아이 1인당 30만원이라는 일률적 산정이 문제라고 하는데, 서구사회 기준으로 한다면 이 정도 양육비면 많지는 않을지라도 적은 양육비는 아닐 것입니다. 

결국 한국처럼 막대한 사교육비가 없고 국가의 양육지원도 큰 나라에선 큰 문제가 없을 것이지만, 한국처럼 부모가 각종 학원도 보내고 과외도 보내고 거주비가 비싸고 한 나라에선 문제가 매우 복잡해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한국도 서구 선진국처럼 하자는 것은 이혼한 전아내의 자식에게까지 한달에 보통 1백만원 이상의 막대한 사교육비, 거주비까지 지원하라는 것입니다.

특히 거주비와 사교육비는 결국 철저히 국가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데 이를 완전히 부모에게 전가시킨다는 점에서 한국사회가 서구사회처럼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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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뉴스 게시판을 서울신문의 양육비 기사로 도배를 해놓은 다음을 보며 다음이 좌파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짤로 포스팅을 끝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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